스마트폰(smart phone)은 스마트(smart)하지 않다.


정규완의 성공병법


스마트폰(smart phone)은 스마트(smart)하지 않다.



스마트폰은 ‘smart phone’이라는 영어에서 나왔다.

smart라는 영어 뜻이 ‘영리한, 재치있는, 똑똑한, 맵시있는’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smart가 ‘맵시있는’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사물(私物)에 smart란 단어를 붙여도 어색하지가 않다.


그러나, ‘영리한, 재치있는, 똑똑한’이란 뜻으로 사물(私物)에 smart란 단어를 붙이면 뭔가 상식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어색하다. ‘영리한 전화기’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간혹 ‘영리한 강아지’와 같이 ‘영리한’이 동물(動物)에 붙는 경우가 있긴 하다. ‘영리한 옥수수’, ‘영리한 나무’와 같이 식물(植物)에 ‘영리한’이란 단어가 붙는 것도 어색하다. ‘영리한 의자’라든가 ‘영리한 선풍기’와 같이 ‘영리한’이 사물에 붙는 것은 더더욱 상식적으로 어색하다.


그런데, ‘smart phone’이라는 단어가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맥락(context)를 살펴보면, ‘맵시있는’이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역시 ‘영리한’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smart phone)이 대중화되어서 스마트폰(smart phone)을 사용해도 그다지 스마트(smart)해 보이지 않지만, 스마트폰(smart phone)이 나왔을 초창기에는 스마트폰(smart phone)을 쓰는 사람이 왠지 스마트한 인생(life)을 사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광고가 많이 나왔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철이’가 있다고 하자. 그 ‘철이’가 어른이 되어 스스로를 남들에게 소개하거나 홍보할 때 “저는 영리한 철이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자만이 넘치고 허세(虛勢)넘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간혹 농담으로 “저는 영리한 철이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면, 듣는 사람이 “그래 너 영리하구나! ^^ :)”하면서 역시 농(弄)으로 받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철이를 만날 때마다 계속 사람들에게 “저는 영리한 철이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이 철이를 제 정신으로 여기지 않거나, 혹은 대단히 자만스런 인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참 이상한 게, 현대의 일반인들이 스마트폰(smart phone)이란 단어를 우리가 주변에서 수없이 듣는데, 그 스마트폰(smart phone)이라는 단어가 주는 우스꽝스러움을 인식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스마트폰(smart phone)은 그냥 ‘다기능 폰’, ‘고기능 폰’ 정도의 표현이면 충분히 그 특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스마트폰(smart phone)이라는 용어’는 스마트폰(smart phone)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거대 대기업 그리고 그 기업들에서 광고비를 받는 언론이 만든 일종의 허세(虛勢)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스마트폰(smart phone)을 사용하면 그 사용자(user)가 스마트(smart)한 것처럼 남들에게 보여지고, 그리고 그 사용자(user)도 스마트(smart)하게 스스로 느껴지게끔 감정설계하기 위해 만든 용어(用語)가 스마트폰(smart phone)이다. 지금은 스마트폰(smart phone) 사용이 보편화되어서, 스마트폰(smart phone)을 사용해도 별로 스마트(smart)해 보이지 않지만, 스마트폰(smart phone)이라는 용어 자체가 주는 허세적 의도는 우리가 스마트폰(smart phone)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마다, 우리의 뇌를 조금씩 세뇌(洗腦)시키는 것이다. “스마트폰(smart phone)은 smart해”라고 우리 귀에 속삭이면서 우리를 아주 조금씩 세뇌(洗腦)시키는 것이다. "에이 뭘 그렇게 치사하게 구나? 뭐 스마트폰(smart phone)이란 용어가 우리를 세뇌시킬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우리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우리를 아주아주 서서히 세뇌하는 것이 대기업의 애초의 의도다.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 사회에서 이뤄지는 이 정도의 용어 장난질은 귀엽게(?) 넘어갈 수 있고,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언어’에 의한 장난질은 거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개개인들도 자주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언어 ‘장난질’을 장난으로 여기지 않고, 삶의 본질로 여긴다면 당신은 남의 언어라는 실에 의해 춤을 추는 광대나 노예에 불과하게 될 지도 모른다. 무릇, 성공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쓰는 계략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다. 삼국지(三國志)에서 우리는 장수(a)가 거짓으로 패한 것처럼 도망가는데, 거짓인 줄도 모르고 승리감(勝利感)에 도취되어 쫓아가는 장수(b)를 자주 목격한다. 그 장수(b)는 협곡(峽谷)에 갇히거나, 도랑에 빠지거나 해서 대부분은 비참한 패배 혹은 죽음을 당하게 된다. 시장경제가 사람을 죽고 죽이는 전쟁(戰爭)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경쟁(競爭)을 근본원리로 삼기 때문에 제한된 조건 하에서 ‘언어(言語)’라는 도구를 가지고 속고 속이고 하는 '게임'은 어느 정도 용납이 된다. 어찌 보면 그런 가벼운 속고 속이기가 인간 사회의 재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번 남에게 속거나 혹은 심각하게 남에게 속는다면 절대 성공(成功)한 인생이 될 수 없다. 당신이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당신이 돈을 뜯어 가기 위한 각종 인간 군상(群像), 이벤트 등이 당신 앞에 길다랗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적당히 돈을 ‘뜯기면’ 그것도 인간 사회의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재산을 잃거나 대부분의 재산을 잃으면 당신의 행복하지 않게 되고,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마트폰(smart phone)이 스마트(smart)한 것이 아니고, 스마트폰(smart phone)을 제조하는 회사가 스마트(smart)한 것이다.


스마트폰(smart phone)을 사용하는 사람이 스마트(smart)한 것이 아니고, 스마트폰(smart phone)을 판매한 회사가 스마트(smart)한 것이다.

이 포스트의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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